벼 유전자 64,896종 DNA칩에 심었다
- 세계 최고 집적도… 신품종 탄생예고 -
- 김민균 /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부교수mkkim3@plaza.snu.ac.kr
- 남백희 / 명지대 생명과학정보학부 교수bhnahm@bio.mju.ac.kr
21세기 벽두인 2000년을 기점으로 벼의 생명현상을 주관하는 생명정보물질인 유전체(지놈) 염기서열이 다국적기업들(신젠타, 몬산토)과 중국의 정부연구기관, 그리고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 컨소시엄에 의해 경쟁적으로 분석 완료되었다. 그 결과 전체 유전자 해독이 가능하게 되면서 이른바 기능유전체(functional genomics) 연구가 인류의 대표적 주곡작물인 벼를 대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최근에 축적된 벼의 발현유전자 정보를 활용하여 2만8천개 이상의 벼의 완전한 DNA가 보고되면서, 기능을 모르고 있는 벼 유전자의 기능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되고 있는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벼 유전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벼에 존재하는 모든 유전자를 찾아내어 각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고 나아가 그 중 유용한 유전자를 식물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식물체에 도입, 발현시킴으로써 신기능, 고부가가치의 식물을 창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위하여 세계 열강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현실이다.
DNA 칩은 유전체학과 생물정보학, 컴퓨터공학, 그리고 기계공학이 접목된 21세기 생명공학기술의 대표적 산물로서, 미지의 유전자 기능을 대량으로 밝히는 기능유전체 연구의 필수적인 도구로 그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지의 유전자 기능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하여 식물의 발달 단계나 기관 부위에 따른 유전자의 발현 양상, 혹은 다양한 환경에 대한 유전자 발현의 변화를 분석한다. 이를 위하여 종래에는 식물체로부터 RNA를 분리하여 연구 대상 개별 유전자의 양적인 변화를 RNA 젤-얼룩(Northern blot) 분석을 통하여 조사하는 방법을 이용하였으나, 최근에는 첨단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대량의 유전자를 대상으로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는 DNA 칩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전환되고 있다.
DNA 칩은 2.5×7.5cm 정도의 표면 처리된 현미경 슬라이드 유리판에 수많은 유전자를 점적(spotting) 고정화한 것인데 유전자의 발현 양상을 대량으로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적게는 1천개에서 많게는 3만개의 서로 다른 유전자 단편을 집적한 것으로 종래의 개별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것보다 1천~3만배의 실험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분석하고자 하는 세포나 조직에서 RNA를 추출한 후에 표지를 달아서 혼성화 반응을 거치면 발현수준에 따라 신호를 발생하게 된다. 이 신호를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하여 감지, 분석함으로써 대량의 유전자 탐색이 가능하며, 나아가 대사 경로의 전체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최근 저자들이 이끌고 있는 서울대(http://plaza1.snu.ac.
kr/~plant7)와 명지대 연구팀(http://www.ggbio.com)은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 중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http://cfgc.snu.ac.kr)의 지원으로 60K의 세계 최대 집적도 벼 DNA 칩을 제작하였다. 이는 독일 퀴아젠사와 공동으로 벼의 전체 유전자를 대표하는 70개의 염기로 구성된 유전자 단편 (70mer 올리고 뉴클레오타이드) 6만여 점을 최근 중국과 국제 컨소시엄이 발표한 벼의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설계, 합성한 후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의 데이비드 갤브레이스 교수팀과 공동으로 제작되었다.
제작된 벼 DNA 60K 칩은 벼의 모든 유전자를 망라하는 70mer의 올리고 뉴클레오타이드 5만8천417종과 그 중 잘 알려진 유전자의 또 다른 부위에 해당하는 2천310종, 그리고 66종과 4천99종의 대조구를 설정하여 총 6만4천896종의 올리고 뉴클레오타이드를 이용하였다. 칩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하여 각각의 올리고 뉴클레오타이드를 0.1㎜ 크기의 극히 미세한 점으로 26×26개 단위로 12×4 블록에 점적하였다. 그 결과, 한 개 슬라이드에 3만2천448 개씩 모두 두장의 슬라이드에 6만4천896종을 점적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인간 유전체의 경우 45K를 두 장에 혹은 63K를 5장에 나누어 합성 제작한 것이 판매되고 있다. 이번 칩은 방대한 분석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료의 효과적인 분석을 위한 후속 연구가 진행중에 있으며, 기술료를 회수하는 수준에서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벼 60K DNA 칩을 공급하고 있다.
그간 세계 각국의 연구실에서는 자신들이 보유한 고유의 유전자를 사용하여 목적에 따라 제한된 수량의 벼 DNA 칩을 자체 제작하여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활용이 불가능하였다. DNA 칩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고정 유전자의 확보가 관건이 되며 작은 유리판에 많은 유전자를 고밀도로 점적하는 기술 또한 제한되어 왔다. 한편 상용 벼 DNA 칩의 경우 아피메트릭스 사가 제작 판매하는 24K DNA 칩이 있지만 그 값이 너무 비쌀 뿐만 아니라 자체 제작, 판매하는 고가의 분석 장비를 필요로 하여 활용이 극히 제한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금번의 고집적도 벼 DNA 칩 개발로 인하여 다수의 국내외 연구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대량의 벼 유전자 발현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유용 유전자의 대량 발굴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고 멀지않은 훗날, 이렇게 발굴된 유용 유전자가 우리 연구기술진에 의해 획기적인 새로운 작물 창출에 이용되어 세계 시장을 누빌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발췌 : 월간 '과학과 기술' 2003년 10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