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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과학기술부가 名退 대상?

명예퇴직이라는 말이 언뜻 보면 그리 나쁜 말은 아니다. 퇴직당하는 당사자가 아니면 말이다. 이제 할 만큼 했다, 명예롭게 물러나라,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라 등의 뜻이 함축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는 과학기술부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산업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으며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많은 신기술 개발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과학기술부에서 하는 가장 큰 일은 연구비 지급이다. 과학기술 관련 연구자에게 있어 연구비는 생명이다. 미국이나 유럽 과학자 중에서는 맥주 몇 잔 마시고는 서로에게 '너는 연구비를 위해서라면 마누라나 남편도 팔 놈'이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건 좀 과하다고 치더라도 연구에 몰두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항상 연구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연구비를 타기 쉬운 섹시한 분야로 몰리다 보니 물리학자의 65%와 화학자의 56%가 '나노과학'을 전공하는 재미있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과학기술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각종 연구사업을 보면 과학이 명퇴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과학기술부에서 연구비를 받으려면 자신이 어떤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서 연구비를 받으려 하는가를 '신고'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물리학 실험 분야에서 '레이저 광선이 사람의 비강(鼻腔)에서 나온 후 3백18초 지나서 고체상태가 된 분비물에 의해 어떻게 산란되는가'의 주제를 갖고 연구하고자 한다고 치자. 자기 분야를 '물리학 실험' '생물물리학 실험' '이비인후과 물리' '레이저광학' 등으로 분류할 것이다. 그런데 웬걸 자신을 '물리학'으로 신고.선언하는 것은 과학기술부에서조차 원천봉쇄돼 있다. 생물학.화학.지구과학.수학 모두 분야로조차 인정이 안된다. 그럼 과기부에서 정하는 과학기술 분야는 어떤 것이 있나를 약간 지루하더라도 참고 보기 바란다. 그러면 길이 보일 것이다. 망해가는 길이:(1)정보산업 분야 (2)기계설비 분야 (3)소재물질공정 분야, 어쩌고 하다가 (7)공공복지 분야 (8)원천요소기술 분야 (9)연구기획평가 분야 (10)기타 기술이 있다. 분명 공학.기술 위주다. 너무 재미있는 것은 (9)번의 연구기획평가 분야다. 물리.화학.생물.지구화학을 전 인생을 바쳐 연구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8만명은 족히 될 터인 데 반해 연구기획평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마도 8명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자는 과학기술부에 '없지만' 연구기획평가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과학기술부에 '있다'. 물리.화학.수학.생물.지구과학은 분명 과학기술부 '기술 분류표'에서 명퇴당하고 있다. 반면 금속공학이나 요업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과학기술부 '기술 분류표'는 가히 무릉도원을 연상시킬 만하다. 이런 와중에서도 물리.수학.화학.생물. 지구과학 하시는 과학자들은 열심히 노력해 각개전투로 엄청난 연구비를 따고 있다. 신소자 기술.전자제품 기술.화학기능재료 기술.세포공학 기술.지질조사 기술.극한 기술 정말 눈물난다. 기초과학을 천대하면서 공학.기술만 살려고 발버둥쳐봤자 오래 못 간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망국의 길이다. 물론 과학기술부의 고민도 이해가 간다. 국회의원을 설득하고 예산처에서 돈을 타려면 '당장 돈이 된다'를 강조하는 것이 낫고 그렇다 보니 몇몇 헌신적인 공학자의 뛰어난 기획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과학기술부의 '분야' '기술' 분류에는 각종 공학분야의 '분야 이기주의'를 막으려는 흔적도, 분야를 융합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그러나 과학기술부에서 '과학'을 떼어내고 나면 '기술부'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과학기술부 자체의 명퇴 가능성이 심히 걱정된다. 크게 보자. 작은 것에서 시작하자. 과학기술부가 사는 길은 기초과학기술 연구자의 과학기술부가 되는 것이다. 김대식 서울대 교수.고체물리학 (03/10/31 중앙일보면)